비런치2014

창업가가 사업에 망할 때를 대비하는 방법

2019년 초 사운들리를 정리하려고 마음 먹고 난 다음에 우연히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자살 행위라는 글(Startups are Financial Suiside)을 읽었다. 스타트업은 열에 아홉은 실패한다. 국내에서 벤처 인증을 받은 회사 중 IPO까지 가는 회사의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연간 약 4만개의 벤처 회사가 만들어지지만 국내 M&A 건수는 연간 140건이 되질 않아서 그 비율은 0.4%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내 사업이 성공할꺼라는 확신 하나 만으로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별 다른 재무적인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이다. 저자는 구글 출신에다가 $25M, 즉 한화로 300억원에 가까운 투자 유치에 성공했었다. 매출을 내는 제품 또한 있었음에도 9년 만에 사업을 그만하게 되었을 때는 통장 잔고가 사업 전보다 더 줄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재무적인 무방비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The Barefoot Investor라는 책을 추천했고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책 내용의 핵심은 먼저 빚을 청산해 가고, 평생을 살 집을 마련한 다음 나머지 돈으로 쭉 ETF와 같은 지수 연동형 상품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즉, 연간 7-10%의 수익률을 기대하며 최소한의 금액이라도 장기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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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한 때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맨발바닥 투자자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창업가에게 가장 유리할까?

하지만 이런 대중적인 조언이 창업가에게 가장 맞는 방법일까? 창업가가 망할 때를 대비해 미리 재무적으로 준비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창업가가 창업가에 투자하기

나는 내 사업이 망해서 정리하였던 경험을 되짚어 보다가 지수 연동형 상품에 월급 일부를 저축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10배 나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창업하는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 두는 것이다.

사실 비상장 기업에 투자를 하려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1) 투자할 회사 대표와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 (2) 비상장 회사에 대한 사업성 분석을 하는 것, (3) 그런 회사에 유의미한 정도의 투자 금액을 마련하는 것이다. 창업가는 이런 세 가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서 누구보다 초기의 스타트업에 투자 하기가 용이하다.

1. 초기 창업가들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첫 번째로 투자할 대상을 찾고 대표와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생각해보자.

창업가로써 스타트업을 운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창업가들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성장 스테이지에 있는 창업가들은 각종 IR 행사에서 인사를 나누게 된다. 내 회사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에 찾아가 사업에 있어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투자를 받은 회사라면 같은 투자사 포트폴리오에 속하는 다른 회사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다. 미디어 행사 그리고 정부 행사에 참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창업가들도 만나게 된다. 특히 사업 분야가 비슷한 창업가들은 더더욱 만날 기회가 많고 나눌 대화도 많다.

이 과정을 통해서 대표들간에 자잘한 소모임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이 맞는 대표들은 따로 만나서 직원이나 심지어 공동 창업가에게도 할 수 없는 고민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축하해 주고, 안 좋은 일을 알게 되면 공감해 주게 된다. 비슷하게 고생하고 있다는 그 공감대 덕분에 창업가들은 서로 돕고 선배 창업가는 후배 창업가에게 내리 사랑을 전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결국 창업가가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네트워킹 속에서 비상장 기업을 투자할 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인 회사 대표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는 문제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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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캔버스를 사용해서 손 쉽게 다른 회사의 사업성을 분석해 볼 수 있다

2. 초기 스타트업을 분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비상장 회사에 투자할 때에는 회사의 사업성 분석이 쉽지 않지만 창업가는 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비상장 회사의 경우 재무제표로 대변되는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한 회사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많지 않다. 대신 어떤 시장을 공략하는지, 어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인지, 그걸 해결하기 위한 회사의 인적자원은 어떠한지 등의 보다 정성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VC와 액셀러레이터 같은 전문 투자 기관과 창업가 본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창업가의 경우 VC 혹은 엑셀러레이터 같은 투자 전문 기관과는 다르게 특정 사업의 고객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창업가들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고객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있으므로 고객에게서 어떤 말이 나와야 잘되는 사업인지 알고 있다. 사업의 구성하는 요소를 살펴보면서 고객의 문제와 회사의 제품이 잘 맞는지, 고객은 어떻게 획득할지 수익 모델은 말이 되는지 자신이 고민했던 깊이 만큼 쉽게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 모델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이 팀이 그런 과정을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는 팀인지 판단할 수 있다.

“Never invest in a business you cannot understand.” – Warren Buffett

워렌 버핏 그리고 피터 린치와 같은 투자의 구루들 모두 한결같이 얘기하는 것이 있다. 그건 투자 대상에 대해 충분히 잘 아는 것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비상장 회사에 대한 투자는 창업가가 잘 할 수 있는 투자 중에 하나이며 현명한 투자 방법이 된다.

3. 투자금 없이 투자할 수 있다

세 번째로 투자금이 없어도 주식 교환 (Swap)을 통해서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창업가는 창업하는 회사에 초기 비용을 대는 것 때문에 부담이 클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를 알게되고 투자 제안까지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자신이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면 투자가 불가능하다. 창업가는 이 점에 있어서 자신의 비상장 회사 주식이라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에 주식 교환의 형태로 투자금 없이도 투자가 가능하다.

내가 보유한 회사 지분 30% 중에 2%P를 다른 회사의 지분과 교환했다고 생각해 보자. 초기의 경우 이 2%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정도의 가치 밖에 되지 않지만, 회사 가치가 1,000억대만 가더라도 수억원 이상의 가치가 된다. 그리고 내 회사가 잘 된 경우, 잘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그때 2% 지분을 더 가지는 것 혹은 2% 지분을 덜 가지는 것은 10배 덜 중요한 문제이다.

망할 때를 대비하는 것 이상의 효과

이렇듯 창업가가 주변의 다른 창업가에게 투자를 하는 것은 창업을 떠나 개인의 투자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장점이 상당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투자는 창업가의 재무적인 리스크를 관리해 주는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다른 창업가에게 투자함으로써 창업가는 자신의 사업을 좀 더 냉정히 살펴볼 수 있게 되고, 더 끈끈히 서로 도울 수 있는 창업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피드백 루프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창업가의 경우 창업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을 할 정도로 어떤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시작한다. 확고한 신념은 피드백 루프를 가질 필요성을 못느끼게 한다. 이는 결국 외부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사업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시그널들을 놓치게 한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투자자로써 다른 사람의 사업을 바라보게 되면 그 사업의 부족한 점과 채워야 할 부분에 대해 보다 더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업의 강점과 약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 스스로의 사업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 진다. 이런 객관화를 통해서 창업가 스스로 그간 부족했던 자신의 사업에 대한 피드백 루프를 확고히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창업가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고생을 하기 때문에 다른 창업가에 대한 공감대가 크고 그 공감대 덕분에 서로를 도우려는 성향이 강하다. 투자 관계로 두 창업가가 연결되는 경우 이러한 공감대와 서로 도우려는 의지는 배가 되고, 서로 함께 하는 협업에 대해서도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관계를 조율할 수 있게 된다.

투자를 받아야 할 이유를 찾기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또 아무런 대비없이 사업에만 올인 한다면 앞으로 10년 뒤에 비슷한 후회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혹은 이제막 창업을 시작하는 창업가에게 주식 교환이나 엔젤 투자를 물었을 때 아쉽게도 대부분은 거절을 했다. 주식 교환의 경우 이전에 주식 교환으로 골머리가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그리고 엔젤 투자의 경우는 전문 투자자가 아닌 개인에게 받기 꺼려하는 것이 이유가 된듯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투자를 받는 것이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안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정도의 초기 기업이라면 다른 투자자도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마이크로 VC, 엑셀러레이터의 경우 자사만의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하면서 창업가를 설득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는 기여 정도가 미비한 개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는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기업에 다른 투자자는 제공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추가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한 특별한 가치는 (1) 사업 분야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성, (2) 실제 창업 아이디어를 디벨롭하는 것을 도와서 실제 성과를 내어 주는 것, (3) 회사를 직접적으로 홍보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 등이 있을 것 같다. 즉, (1) 인재 채용으로 많은 경력과 성과를 낸 개인이 인재 채용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 (2) 창업가의 아이디어를 듣고 더 발전시키고 정량적 검증까지 해 주는 사람이 투자하는 것, (3)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자신의 콘텐츠 성격이 맞는 유튜버(혹은 크리에이터)가 홍보를 약속하며 투자하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창업가의 커뮤니티에서 시작

2014년도에 나는 드디어 사운들리의 기술을 활용하는 사업 모델이 준비되어서 여러 군데의 IR 행사를 돌아 다녔었다. 그때 당시 토스 이승건 대표도 이제막 Toss 앱으로 성과를 내어 투자 유치를 돌고 있었고 리멤버가 첫 번째 기관 투자 유치를 시작했었다. 뱅크샐러드는 카드 비교 서비스를 가지고 IR을 하고 있었고 스푼의 최혁재 대표는 배터리 대여 사업을 한참하고 있었다. 오늘의 집 이승재 대표는 이제막 시드 투자를 마치고 앱을 개발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직은 평범하게 출발점에 서 있던 시기였다.

지금 이 순간에 Toss는 국내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중에 하나로 성장했고, 리멤버는 네이버에 인수되었으며 뱅크샐러드는 KT가 인수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스푼은 오디오앱으로 글로벌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오늘의 집은 코로나 이후 유니콘에 가깝게 성장하고 있다. 나는 2014년도에 급여 일부를 저축할 여건조차 되지 않았지만 빚을 내어서라도 주변에 있는 회사 2-3군데에 투자를 했었어야 했다. 그게 내 사업을 잘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걸 실현하기 위해서 먼저 창업가들은 각자의 창업가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것에 좀 더 시간 할애하는 게 필요하다. 대단히 큰 커뮤니티가 아니라 사업을 하는 업계가 비슷하거나 아니면 우연찮게 개인적인 친분이 쌓여서 이뤄진 작은 커뮤니티부터 시작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사업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서로를 도우면서 신뢰를 쌓아 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창업가가 보이면 직접적인 도움을 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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