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추석,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룹 채팅앱 쪽에서 여러 사업 아이디어들을 테스트해 보았지만 큰 반향을 얻은 것이 없었다. 이젠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는 이전에 잠깐 농담 삼아 얘기 했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 덕분에 나는 프로덕트 마켓 핏(PMF, Product-Market Fit)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끼기 위한 방법 또한 깨닫게 되었다.
1. 영어권의 강의를 수입하는 사업으로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끼다
그룹 채팅앱을 써 줄 고객군을 찾다가 영어권에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많은 강의를 알게 되었다.
강의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고 본인의 잠재 고객을 모아서 하는 지식 크리에이터(인플루언서)들의 강의였다. 그런데 이런 강의들이 (1) 흥미로운 주제에 (2) 놀라운 수강생 만족도를 보이고 있었는데, 영어가 서툰 나로써는 강의에 참여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같이 일하던 동료와 나눴던 얘기는, “뭐 잘 안되면 그냥 라이브 영어 강의만 가져와서 팔아서 강의 무역상만 해도 비영어권 글로벌 사업은 되겠다” 였다.
이렇게 추석에 급하게 줌 회의를 스케줄하고 “영어권의 라이브 강의를 수입하는 사업”을 검증하기로 했다. 그간 모아두었던 영어권의 유명한 크리에이터들, 트위터 인플루언서들에게 트위터 DM을 보냈다. 이미 여러번 DM을 보냈다가 계속 씹혔기 때문에 DM을 보내는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트위터 DM의 응답 알림이 바로 오기 시작헀다. 그간 그룹 채팅앱을 사용해 보지 않겠냐며 DM을 여러번 보냈을 때 답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답을 보내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했다. 이전에 보낸 DM들은 다 그냥 제대로 전달이 안되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 다들 읽어는 보지만 대답할 가치를 못느낀 것이었다!
첫 답변 중 하나는 Gumroad 창업가이자 새로운 업무 방식 책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Sahil Lavingia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젠 Gumroad외에도 엔젤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답을 주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자신이 아이디어를 덧붙여 주는 것이 신기했다. 이 사업 아이디어가 제대로 아픈 곳을 찌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 크리에이터의 라이브 강의는 점점 많아지고, 각 강의는 수강료가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400만원에 이른다. 이런 강의의 수강생은 한번 기수마다 20명에서 1,200명까지 있다. 지식 크리에이터가 연간 수억원을 넘어서 수십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원래 수강생 고객 풀을 전혀 침해하지 않고 새로운 수강생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우리의 수수료는 적게 잡아도 20-30%는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강의들은 비슷한 분야의 강의끼리 번들링 되기도 했었는데, 이건 마치 대학의 교육을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단순히 강의 플랫폼이 아니라, 그간 온라인 강의가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대학의 교육을 점차 대체하고 대학이 되는 사업으로 보였다. 비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대학교들을 만들 수 있고 그건 시장 가치나 우리 삶에 주는 임팩트가 대단한 사업으로 느껴졌다.
2. 고객이 연락 오는게 무서운 그 느낌
당시 약 130명 정도의 크리에이터 명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1차 테스트를 위해서 30명 정도에게 먼저 DM을 보낸 것이었다. 고객 반응이 하나 하나 올때 처음에는 신기했다. 조금 지나니까 이거 제대로 짚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들뜨다가 점점 답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DM에 대답을 해 준 크리에이터들과 이제 어떻게 진행을 할 지 세부 사항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오퍼레이션을 해야 하는데 당시 두 명의 풀타임과 대학생 인턴 1명의 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DM의 대답이 올 수록 우리가 이걸 다 소화할 수 있나 – 하고 무서워졌다.
이때 정확히 알았다.
프로덕트 마켓 핏의 느낌. 고객이 우리 제품을 요구하는 디맨드가 갑자기 폭발해서, 스타트업 팀이 이걸 대응하기가 무서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 세그먼트의 창업가인 피터 레인하트의 얘기처럼, 프로덕트 마켓 핏은 이런 지뢰를 밟는 느낌인 것이었다.
3. 프로덕트 마켓 핏은 먼저 느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사업 아이디어는 프로덕트 마켓 핏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10월 이후 약 3개월간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어 봤지만, 라이브 영어 강의 자체를 낮은 비용으로 비영어권의 언어로 만들수가 없었다. 통역사를 고용해서 비용을 낮춰도 비용이 상당했고, 자막을 머신러닝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도 결국 전문가 비용이 크게 들었다. 강의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녹화본에 자막을 함께 다는 방식도 시도를 하였으나 VIKI와 같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아닌 교육 콘텐츠의 경우는 번역을 하는 사람을 충분히 많이 모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서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솔루션을 제공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만) 고객이 정말로 필요한 제품을 고객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줄기 세포 약인데 탈모 부위에 바르면 2주 내에 머리가 자라기 시작하고 완전히 탈모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 보면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낄 수 있다. 내 몸의 혈당 변화를 감지해서 내가 먹어도 살이 안찌는 음식과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음식을 구분해 줘서 사용만 하면 10-20% 감량 효과가 있는 스마트 왓치가 나왔다고 20-30대 여자분들께 얘기해 보면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기여한 깃허브 리파지터리에 연동만 하면 자신의 개발 레벨이 어떻게 되고 개발자 테크 트리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석해 주는 앱이 있다고 개발자에게 얘기해 보면 프로덕트 마켓 핏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프로덕트 마켓 핏을 우리의 편의대로 많이 사용한다. 아마 10대 때 사랑에 대해 친구들과 논의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린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깊이 느껴보지 못했고, 하지만 들은 것은 많고, 그리고 내가 가진 감정이 사랑이었으면 하는 욕구도 있어서 정확히 모르고 얘기를 많이 한다.
지금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고 있다면 먼저 그게 어떤 건지 느껴보자.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걱정은 던져 버리고, 고객이 정말 나를 잡고 물어지는 정도로 필요하다고 할 만한 제품의 형태를 그려보자. 그리고 그런 제품이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꾸며서 고객과 얘기해 보자. 그때의 그 느낌, 그게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았을 때의 느낌일 것이다.
AI 사업 오픈 채팅방 (암호: gpter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AI와 프로덕트 마켓 핏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