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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이었다. 사운들리는 TV 광고에 “카카오톡을 실행하고 흔들어 주세요!” 라는 배너를 삽입하여, 이를 보고 실제 흔드는 사람에게 경품 페이지를 노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자세히 몰라도 된다. 암튼 사람들이 TV를 보고 흔들어야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TV 광고에 나오는 배너를 확인한 뒤, 앱을 실행해서 스마트폰을 흔드는 동작을 할 것인가? 인터뷰할 사람들을 초청해서 가정집에서 실험을 하자니, 이미 사람들이 맥락을 알아 버려서 흔드는 동작을 과하게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TV를 보는 기차역 대합실과 같은 곳에서 하려고 하니 한국철도 공기업을 설득하는데만 몇 주가 걸릴 것 같다. 목욕탕도 생각해 봤는데 사람들의 스마트폰이 락커에 있을 것 같다… 빠르게 실행할 방법이 없을까?
우리 팀이 고안해낸 방법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삼각대를 놓고, 그 위에 태블릿을 설치한 뒤 위의 캡쳐 화면과 같은 광고 영상을 넣고 재생하는 것이다. 광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잘 안볼테니 무한도전과 같은 재미진 영상 클립들을 재생하다가 중간에 광고를 재생했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은 뒷편에 숨어서
(1) 한번이라도 태블릿에 눈을 맞춘 사람의 수를 카운트 하고,
(2) 실제 흔드는 사람의 수를 카운트 하였다.
실제 위 광고를 보고 흔들면 우리가 직접 후다닥 뛰어 나가서 바나나 우유를 건네 주고 정성적인 인터뷰를 하였다 … 사람들이 많이 놀랬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일정 시간 기다릴 수 밖에 없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태블릿의 영상에 눈이 갔었다. 하루 종일 이 테스트를 하면 그런 사람을 약 40-50명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지하철 역사의 직원분들을 피해서 도망다니고 지하철 플랫폼의 CCTV가 안보이는 사각을 찾고 하다 보니 … 하루에 테스트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적었다. 가끔 지하철 광고를 검수하러 다니는 광고 회사 직원들이 와서 항의하면 또 다른 역사로 도망갔다.
그렇게 해서 태블릿 영상에 집중한 총 771명의 실험 데이터를 얻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카카오톡의 경우 12.2%가 실제 앱을 보고 흔들었다. 실험 도중에 지하철 역사 밖에 바나나 우유를 사러 자주 나갔다 왔어야 했다. 어떤 여대생은 정말 … 스마트폰 꺼내는데 0.5초, 앱 실행에 0.5초 … 영상을 본지 1초 만에 흔들고는 반응이 없자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너무 빨라서 우유를 전해주지 못했다 (어 뭐가 지나갔는데 … 이런 느낌?).
[mailerlite_form form_id=5]알베르토 사보이아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The Right It)은 이런 프리토타이핑을 통해서 안될 사업 아이디어를 빨리 걸러 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이미 스티브 블랭크의 고객 개발 (Customer Development), 에릭 리즈의 린스타트업, 그리고 보다 실행에 초점을 두고 쉽게 설명된 애쉬 모리아의 린스타트업과 신디 알바레즈의 린 고객 개발과 같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가설 설정부터 실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벗하고 반복(iteration)하는 기준까지 이렇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 책은 본적이 없다. 사실 책의 핵심 내용은 2011년도에 PDF로 공개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2011년도에 이 PDF를 읽어보지 못한게 한스러울 정도이다.
알베르토 아저씨의 방법론은 매우 간결하다. 이를 사운들리의 실험과 연관지어 설명하면 아래 표와 같아 진다.
1 | 사업 아이디어를 얻음 | TV 광고주는 할 얘기가 많은데 시청자에게 전달을 못하고 있으니, 시청자가 앱을 실행하고 흔드는 동작을 하면 경품 이벤트와 더불어서 광고 메시지를 더 전달하는게 어떨까? |
2 | 시장 호응 가설 써 보기 | TV 시청을 하던 시청자는 TV 광고에 “앱 실행하고 흔들어 주세요” 라는 배너가 있고 경품이 연결되어 있다면 충분히 많은 수의 시청자가 기꺼히 앱을 실행하고 흔들 것이다. |
3 | 가설을 XYZ로 다시 쓰기 | TV 광고에 “앱 실행하고 흔들어 주세요” 라는 배너가 있으면, 카카오톡을 설치하고 있는 TV 시청자 중에 5% 이상이 앱을 실행하고 흔드는 액션을 TV 광고가 끝나기 전에 할 것이다. |
4 |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xyz 가설로 여러개 써 보기 | 지하철 플랫폼에 설치된 태블릿에서 “앱 실행하고 흔들어 주세요” 라는 배너가 포함된 TV 광고를 재생하고 있으면, 이 태블릿에 눈을 맞춘 사람들 중에서 5% 이상이 앱을 실행하고 흔드는 액션을 TV 광고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할 것이다. |
5 | 프리토타이핑 실험으로 나만의 데이터 확보 | 카카오톡을 실행하라고 했을 때, 10-30대의 경우 평균 12.2%의 인원이 실제 앱을 실행하고 흔들었음 |
6 | 될놈척도로 판별하여 아이디어를 (1) 추진, (2) 폐기, (3) 수정하기 | 목표한 5% 보다 2배 상회하는 결과를 얻어서 이 사업은 카카오톡과 함께 진행하는 경우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음으로 판별. 하지만, 이후 TV 광고에 배너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 광고주가 거부하여 (그거 카카오톡 광고 아니냐라고 하여), 푸시 알림 형태로 아이디어 수정됨. 이후 사운들리 사업의 향방은 이 글에서 확인하시길 … |
첫 번째로 우리는 우연히 사업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두 번째 단계로써, 이 사업 아이디어를 시장 호응 가설 (Market Engagement Hypothesis) 형태로 작성한다. 누가 어떤 문제가 있는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면 돈 혹은 시간을 제공할 거라는 가설이다.
세 번째로 이 가설을 숫자를 사용해서 다시 쓴다. 이걸 XYZ라는 숫자로 다시 쓴다 한다. 막연히 많은 사람, 좋은 제품 이렇게 쓰는게 아니라 이견의 여지가 없도록 고객의 수와 행동을 숫자를 사용해서 쓰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높은 비율로 반응할 지에 대해 쓴다. 가설의 의미는 명확해지고 검증의 대상도 분명해 진다.
하지만 그런 가설은 당장에 검증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 검증할 수 있는 가설로 다시 쓴다. 그게 네 번째 과정인 xyz로 다시 가설을 쓰는 것이다. 시장 호응 가설을 xyz로 다시 쓰는 것은 프리토타이핑이라는 실험을 기획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번째 단계인 프리토타이핑은 무엇인가?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은 우리가 이걸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검증하는, 즉 마켓 (혹은 문제) 리스크를 검증하는 실험이다. 메신저인데 보낸 메시지가 확인하면 바로 사라지는 앱을 만든다고 하면 프리토타이핑이 필요하다 (마켓 리스크). 시장, 즉 구매하는 사람들의 집합이 과연 호응할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은 우리가 이걸 만들 수 있냐, 즉 프로덕트 (혹은 솔루션) 리스크를 검증해 주는 실험이다. 탈모 치료제를 만들면 성공할거라는 사실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이때는 프로토타이핑이 먼저 필요하다 (프로덕트 리스크).
저자는 다양한 프리토타이핑 방법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 미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 프리토타이핑
- 제품을 만들지 않고 제품이 해야 하는 역할을 사람이 몰래 하는 방식으로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
- 예)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라고 소개하면서 사실 사람이 듣고 몰래 입력해 주기
- 피노키오 프리토타이핑
- 제품의 외관만 만들어서 마치 기능이 있는 것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얼마나 자주 쓰게 되는지 쓰려고 하는 상황에 제품의 외관이 적당한지 등 영감을 얻는 것
- 예) AI 스피커를 나무로 만들어 놓고 집에 적당한 위치를 찾아 놓아둔 뒤, 내가 필요한게 있을 때 말 걸어 보기. 앱의 화면을 스케치 웹앱으로 그려보고 화면을 클릭해 보며 앱 스크린을 왔다 갔다 해 보며 영감을 얻는 것.
- 가짜 문 프리토타이핑
-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제품이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장소를 만든 뒤 관심을 보이는 사람, 사전 주문을 하는 사람의 수를 살펴보기.
- 예) 매장을 열기 전에 간판을 달아 놓고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사람의 수를 확인하기. 혹은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제품을 사전 구매하는 사람의 수를 측정하기
- 하룻밤 프리토타이핑
- 기성품을 조합하여 제품의 기능을 대략 구현한 뒤 실제 판매를 해 보기
- 예) 남의 집에서 돈 내고 숙박하는 사람이 있는지 창업자들의 집에 있는 방을 빌려주는 시도를 해 보기
- 잠입자 프리토타이핑
- 제품이 팔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유사한 제품이 팔리는 곳에 몰래 들어가 진열대에 제품을 놓고 사가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기
- 예) 집에서 나갈때 들어올때 물건을 잊지 않고 놓을 수 있도록 하는 조명 스위치를 만들어서 동네 마트 진열장에 몰래 놓아 두어 보기
- 상표 바꾸기 프리토타이핑
- 비슷한 외관이지만 다른 상품을 마치 내 사업의 제품처럼 포장만 바꿔서 팔아 보기
- 예) 하루 지난 초밥이 할인된 가격이면 수요가 많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루 안지난 초밥을 할인해서 팔아 보기
어디서 들어본 테크닉들이 많다. 고객 개발에서 그리고 린스타트업에서 MVP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더 정확하게는 미케니컬 터크는 컨시어지 MVP, 가짜 문 프리토타입은 선주문 (Pre-order) MVP, 하룻밤 및 상표 바꾸기 프리토타이핑은 다른 사람의 제품을 활용한 (Other people’s product) MVP에 해당한다 (사실 이 개념들을 누가 먼저 말했는가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런 접근 방법에 대해 저자가 이미 2011년도에 PDF로 공유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지막 여섯번째 단계에서는 프리토타이핑을 실행하여 얻은 나만의 데이터를 xyz 가설의 예상 숫자와 비교하여 검증하려고 했던 사업 아이디어가 얼마나 될 놈인지 분류한다. 쉽게 분류하기 위해 저자는 될놈척도라는 것을 제안한다. 사운들리 실험처럼 만일 xyz 가설의 숫자인 5%보다 수집한 데이터가 12%로 훨씬 높다면, 이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반대로 만일 흔드는 사람이 1% 미만이었다면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이걸 너무 정확히 판단하려 말고 대략적인 5단계로 나눠놓은 것이 될놈척도이다.
이런 프리토타이핑 도중에 데이터만 얻어 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제품을 사업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에 대해서 미리 점검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해서 다시 첫번째 단계로 돌아가 검증을 새로 할 수도 있다.
프리토타이핑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다른 방법으로 혹은 약간 수정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프리토타이핑을 진행하고 나면, 위의 될놈척도 그림처럼 여러가지 결과가 나온다 (아이디어 1~65. 각각의 화살표는 다른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른 방법으로 프리토타이핑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제 이 결과를 가지고 사업 아이디어가 폐기되어야 할지, 좀 더 수정되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의 아이디어가 가능성이 높은지 판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디어 불변의 법칙” 책도 사업을 설계하고 검증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저자도 썼듯이 그럼 최초에 검증을 해야 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점이 그러하다. 이는 앤디 라클리프의 말처럼 기술의 변곡점에서 거꾸로 사업 기회를 포착해야 할 수도 있고, 스티브 잡스의 얘기처럼 우리 각자가 열정을 가진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투자자가 아닌 창업자들에게는 이런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과정과 방법에 대한 프레임워크가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이 책은 창업 준비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의미가 있다. 대단한 시간/돈 투자 없이도 혹은 아드레날린이 솟아 오르는, 당장 내일 회사를 관둘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맞닥 드리지 않고도 이것 저것 가볍게 해 볼 수 있다. 그럼 더 많은 창업가가 생길 수 있다. 그럼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알베르토 사보이아 아저씨에게 이런 책을 써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프리토타이핑이란 용어 자체는 이미 MVP가 입에 붙어 버렸기 때문에 안 쓸것 같긴 하지만 …
AI 사업 오픈 채팅방 (암호: gpter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AI와 프로덕트 마켓 핏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코드스테이츠 PM부트 캠프에서 프리토 타입에 관해서 가볍게 배웠는데 오늘 좀 더 깊게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